기술 변혁기에 공룡기업 무너지는 이유…'혁신가의 딜레마' [글로벌 핫이슈]

입력 2023-04-21 07:00   수정 2023-04-21 07:08

혼다, 도요타, 구글….

세 기업은 2000년대부터 세계 시장을 선도했던 초국적 기업이다. 일본 완성차업체는 기술력과 생산 효율을 앞세워 내연차 시장을 지배했다. 구글은 검색 플랫폼을 독점하며 IT업계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올해 기술 변혁기를 맞아 세 기업이 뒤처지는 모양새다.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진 日 완성차업계
20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기술 변혁기에 과거 선도기업이 뒤처지는 '혁신가의 딜레마'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1위를 차지했던 관습을 유지하느라 되레 뒤처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혁신가의 딜레마는 경영 전략의 대가인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사진·1952~2020) 교수가 1997년 창시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혁신적인 제품이나 기술로 성공한 기업들을 다룬다. 성공에 취해 관성을 유지하고 기존 지위를 지키는 데 급급하다 되레 시장에서 도태되는 상황을 뜻한다. 위대한 기업이 왜 몰락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일본 완성차업체는 전기차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전락했다. 지난해 전기차 시장(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에서 중국이 20%를 차지했다. 일본은 2%에 불과했다. 기술에서도 뒤처진다. 중국의 비야디(BYD)와 미국의 테슬라가 전기차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10년 전 세계 최초로 전기 배터리 구동 자동차를 닛산과 미쓰비시가 출시하는 데 성공했지만, 세계 20위 권에서 탈락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혁신가의 딜레마에 속하는 대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일본 완성차업계는 그동안 순수 전기차 기술이 내연차와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축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완성차업체는 뒤늦게 탈탄소 정책을 도입했지만, 방식이 잘못됐다는 평가다. 전기차 대신 수소연료 전지를 자동화한 것이다. 도요타는 전기차 대신 수소차 개발에 주력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일본을 '수소 사회'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론적으로 수소차가 전기차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지만 상용화가 되려면 시기상조라는 평가다.

뒤늦게 일본 완성차업체는 전기차 기술 경쟁에 뛰어들었다. 도요타는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한 뒤 전기차 대전환을 선언했다. 혼다도 2030년까지 30여개 전기차 신형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하지만 경쟁국에 비해 적은 보조금이 약점으로 꼽힌다. 전기차 충전소도 한국과 비교하면 25% 수준이다.

ESG 컨설턴트인 무라사와 요시하사는 "일본 기업은 도쿠가와 쇼군 시대의 폐쇄 국가 같다"며 "변화를 보지 못하고 뛰어들기만 하면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과신했다"고 꼬집었다.
AI 기술을 선도했지만, 뒤처지는 구글
구글도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앞장섰지만, 오픈AI의 챗 GPT에 밀리기 시작해서다.

구글은 AI를 내세워 2010년대를 IT업계에서 군림했다. 구글, 지도, 유튜브, 구글 어시스턴트 등 각종 서비스에 AI 기술을 적용했다. AI가 내장된 서비스를 통해 검색 플랫폼 1위를 수성했다.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 어시스턴트 사용자는 8150만명으로 애플의 시리(7760만명)와 아마존의 알렉사(7160만명)를 앞섰다.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코타나라는 AI를 내세웠지만, 구글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다. MS는 위기를 타개하려 지난해 오픈AI와 손을 잡았다. 지난 2월에는 오픈AI의 챗 GPT를 검색 엔진인 방(Bing)에 도입한 것이다. 적용한 지 한 달 만에 하루 활성 사용자 수(DAU)가 1억명을 돌파했다.

마음이 급해진 구글은 AI 챗봇인 바드를 지난 2월 공개했다. 하지만 챗 GPT에 비해 기능이 뒤쳐진다는 혹평이 잇따랐다. 지난 2월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참석한 바드 시연회에선 오답을 내놓으며 망신만 당했다. 에딘 몰릭 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구글의 바드는 오픈AI의 GPT-4만큼 학습 도구로서의 능력은 없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AI 기술 경쟁에서 참패하며 구글의 수익성이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구글이 AI 기술의 상용화를 머뭇거리는 바람에 MS에 검색 시장 1위를 내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구글도 혁신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오픈AI의 기술 기반이 구글로부터 비롯돼서다. 2012년 캐나다 토론토대의 일리야 수츠케버, 알렉스 크리제브스키가 챗봇의 기본 모델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인간의 뇌세포처럼 작동하는 인공 신경망을 기반으로 AI에 딥러닝을 접목했다. 챗GPT가 구동하는 방식이다.

당시 구글은 두 연구원을 스카우트했고 2017년 인간처럼 대화하는 챗봇을 선보였다. 하지만 수츠케버는 2015년 구글을 나와 샘 올트먼과 오픈AI를 창업했고 지난해 챗 GPT를 공개했다. 검색 광고라는 수익원을 포기하지 못하고 AI 챗봇 상용화에 신중했던 구글이 뒤처지게 됐다.
미국도 혁신의 덫에 걸려
혁신가의 딜레마는 기업을 넘어 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다. 국제 통화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 암호화폐 기술을 등한시하는 데 따른 지적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테라-루나 사태에 이어 6월 셀시우스-스리에로, 11월 FTX 등 주요 암호화폐 기업이 연쇄 파산한 데 따른 조치다. 암호화폐 자체에 대한 규제에서 산업 전반에 걸친 단속 강화에 나설 방침이다.

미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개발해야 하는 동기가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국제 통화시장 및 결제시장에서 달러화 패권이 공고하다. 세계 IT업계는 구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기업이 이끌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통화 모두 미국이 앞서나가는 가운데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암호화폐를 확대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달리 세계 각국은 암호화폐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프레임워크를 구축했다. 암호화폐 기업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영국은 한술 더떠 암호화폐를 통해 금융 허브로 재도약할 계획을 선언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일본 등도 암호화폐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암호화폐 때리기에 나선 미국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컨설팅업체 BCG에 따르면 유럽과 아시아 주요 국가는 이미 2단계인 모의실험을 거쳐 CBDC 프로토타입을 개발해 3단계로 진입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1단계인 기초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추이가 계속되면 중국의 CBDC 기술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통화 패권을 노리는 중국은 기존 통화시스템보다 더 저렴하고 빠른 암호화폐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한창이다.

중국 인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e-CNY라는 디지털 위안화는 현재 중국 23개 성 가운데 15개성에 배포됐다. 총 1000억위안(약 19조원) 규모다. 인민은행은 e-CNY를 국제 디지털 통화 결제의 기술 표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폴리티코는 "암호화폐 기술과 관련해서 미국은 잃을 게 많아서 섣불리 시스템 개선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도?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도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4일 '삼성과 인텔은 안주를 경계해야 한다'는 사설을 통해 경고했다.

삼성전자가 지난 7일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반응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메모리 3강 구도에서 삼성의 입지가 너무 안정적이라서 경쟁사에서 더 이상 점유율을 뺏고 싶지 않은 것 같다"며 "시장에 안정을 가져올 수 있지만 삼성이 자만심에 빠질 수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삼성전자가 D램 시장의 선도기업에 만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35년까지 D램 시장은 3000억달러까지 200%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엄격한 관리 시스템과 과감한 투자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기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가 지금의 성과에 안주하다가 과거 인텔처럼 1위 자리를 빼앗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삼성은 현재 D램 시장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지 않다"며 "과거 인텔이 TSMC와 삼성에 역전당한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삼성전자가 다시 과거의 도전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정신을 언급하며 근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코노미스트는 "진정한 근성으로 불리는 '이병철 스타일'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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